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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편- 제13장 애굽에서 돌아오다

마 2:19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20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역사적·고고학적 연구와 성경 기록을 종합할 때, 헤롯 대왕(Herot the Great)이 사망한 연도는 주전(BC) 4년으로 정설처럼 굳어져 있다.

1. 헤롯의 사망 연도에 관한 역사적 근거

마 2:19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20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

(1) 요세푸스의 기록과 월식

1세기 유대 역사학자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헤롯 대왕은 월식이 일어난 직후이자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 직전에 사망했습니다. 천문학적으로 계산했을 때, 주전 4년 3월 13일에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관측된 개기월식이 이에 정확히 부합한다고 한다.

(2) 아들들의 통치 연도

헤롯이 죽은 후 그의 영토는 세 아들(아켈라오, 헤롯 안디바, 빌립)에게 나누어졌는데, 이들의 통치 시작 연대와 주화 발행 기록을 역산해 보아도 주전 4년 사망설이 가장 신뢰를 얻고 있다고 한다.

(3) 예수님의 탄생과의 관계

헤롯이 주전 4년에 죽었다면, 마태복음 2장에 기록된 아기 예수의 탄생과 동방박사의 방문, 그리고 애굽 피난 사건은 그보다 조금 앞선 주전 5년~4년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주전 4년에 헤롯이 세상을 떠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주의 사자를 통해 요셉에게 현몽하셨고(마 2:19), 아기 예수를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안전하게 인도하실 수 있었다. 하나님의 치밀하고 신비로운 섭리의 시간표가 놀라울 따름이다!

2. 헤롯 아켈라오(Herod Archelaus)

마 2: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성경과 역사 속에 등장하는 헤롯 아켈라오(Herod Archelaus)는 헤롯 대왕의 잔인성과 폭정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결국 비참한 말년을 맞이했던 인물이다. 그의 생애와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배경과 통치 영역

• 가문 : 헤롯 대왕과 사마리아 출신의 아내 말다게 사이에서 태어남

• 통치 지역 : 주전 4년 헤롯 대왕이 죽은 후, 유언에 따라 아버지 영토의 가장 핵심이자 절반에 달하는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 지역을 물려받았다.

• 왕위 등극의 한계 : 아켈라오는 스스로 왕이라 칭하며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 승인을 요구했으나, 유대인들의 거센 반대와 항의로 인해 정식 ‘왕(King)’ 호칭을 받지 못하고 ‘분봉왕(Ethnarch, 민족 지도자)’ 자격으로 통치하게 되었다.

(2) 잔혹한 통치와 폭정

• 유월절 대학살 : 즉위 직후 권력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성전 근처에서 반란과 소요가 일어나자, 아켈라오는 군대를 동원해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진압하는 과정에서 약 3,000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이 무참히 살해되는 비극이 벌어졌다고 한다.

• 아버지보다 더한 포악성 : 아버지 헤롯 대왕의 잔인함을 그대로 닮아 백성들의 원성을 샀으며, 대제사장을 임의로 파면하거나 율법을 무시하는 등 독단적인 통치를 일삼았다.

(3) 성경 속에서의 등장 (마태복음 2:22)

애굽으로 피난을 갔던 요셉과 마리아는 헤롯 대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오려 했만 헤롯 대왕의 아들인 아켈라오가 유대의 임금(통치자)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 유대로 가기를 멈추고 하나님의 지시(현몽)를 받아 아켈라오의 통치 구역을 피해 북쪽의 갈릴리 지방(나사렛)으로 향하게 된다. 당시 갈릴리는 아켈라오가 아닌 그의 동생 헤롯 안디바가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듯 하나님께서는 나사렛예수라 불리도록 처음부터 하나님의 손길이 요셉의 발걸음의 방향을 제시하신 것이다.

(4) 비참한 말년과 유배

폭정과 실정을 견디다 못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연합하여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 직접 아켈라오의 폭정을 고발하게 된다.

결국 통치 9년 만인 주후 6년, 아켈라오는 황제에 의해 왕위에서 파면되고 오늘날의 프랑스 지역인 갈리아(가울)의 비엔느(Vienne)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쫓겨난 이후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은 헤롯 가문의 통치가 끝내 종식되고, 로마 황제가 파견하는 총독(예: 본디오 빌라도 등)의 직접 통치 체제로 바뀌게 되어 예수님의 공생애가 끝나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 발라도 총독 앞에 서게 된다.

싸이트에 올라간 날. 20260727 미 교정원고 오후 4시 7분에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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